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42

감산사 미륵보살상과 아미타불상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신소연) 추천 소장품

감산사 미륵보살상과 아미타불상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신소연) 추천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에 전시 중인 감산사(甘山寺) 미륵보살상(국보 81호)과 아미타불상(국보 82호)은 광배 뒷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통일신라 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불상입니다. 미륵보살상에는 381자의 명문이, 아미타불상에는 392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내용은 불상의 제작 연대와 조성자, 조성 배경을 알려줍니다. 명문의 일부 내용이 일연(一然)의『삼국유사(三國遺事)』권3 탑상(㙮像) 제4 남월산(南月山) 조(條)에도 인용되어 있어 두 상은 조성 당시부터 중요한 불상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지성의 생애와 발원 배경 광배의 명문에 따르면 성덕왕(聖德王) 18년(719) 2월 1..

경주 감은사터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갖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채해정) 추천 소장품

경주 감은사터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갖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채해정) 추천 소장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 우리나라 산 곳곳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기에 산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절을 둘러보게 됩니다. 부처님을 모신 금당(金堂)에는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하지만, 금당 앞에 서 있는 탑에는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습니다. 돌을 네모나게 깎아 3층, 혹은 5층으로 쌓은 탑이 왜 절마다 세워져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탑도 금당처럼 그 안에 부처님을 모셨는데, 불상처럼 눈에 띄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그 앞을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나마 세월이 흘러 금당조차 사라진 폐사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탑은 찾는 이 조차 많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시신을 다비(茶..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권강미) 추천 소장품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권강미) 추천 소장품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고대 불교조각사 연구의 출발점이자 6, 7세기 동아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불교조각품 가운데 하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 상은 일찍이 일본 교토의 고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과 형상이 매우 흡사하여 한국과 일본의 고대 불교조각 교류 연구에 있어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반가사유상은 중국에서는 대개 어떤 주된 불상에 종속되거나 한 부분적인 존재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단독으로 독립되어 예배 대상으로 조성된 예가 드물지만, 백제에 와서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조형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따라서 반가좌 특유의 복잡한 신체 구조를 무리 없이 소화하여 중국의 반가사유상..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권강미) 추천 소장품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권강미) 추천 소장품 반가사유상은 반가좌(半跏坐)라는 특이한 자세 때문에 얼굴과 팔, 다리, 허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치마의 처리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반가사유상의 등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조각사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중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풍부한 조형성과 함께 뛰어난 주조기술을 선보이는 동양조각사에 있어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반가사유상이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의 자세는 출가 전에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인 6~7세기에..

상평통보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이효종) 추천 소장품

상평통보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이효종) 추천 소장품 조선은 건국 초부터 농업을 근본으로 삼는 정책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상업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부는 각종 제도를 정비하면서 화폐도 발행하여 유통시켰습니다. 즉, 고려시대에 유통되었던 은화의 통용을 금지하고, 지폐인 저화(楮貨)와 조선통보(朝鮮通寶), 십전통보(十錢通寶) 같은 동전, 전폐(箭幣)라는 독특한 화폐를 발행하여 유통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는 일반 백성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여 일시적으로 통용되다 중단되곤 하였습니다. 그 대신 일반 백성들은 쌀이나 면포 같은 실질가치가 있는 물품 화폐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금속화폐가 널리 유통되지 못하였던 것은 화폐 정책이 지속성을 갖지 못해서 발생한 측면도 있지만 상품의 유..

황태자(순종) 책봉 금책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박준호) 추천 소장품

황태자(순종) 책봉 금책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박준호) 추천 소장품 1897년(광무 1) 9월 17일 고종황제가 왕태자(순종)를 황태자로 삼으면서 하사한 이 금책은 일종의 송덕문을 금에 새긴 것입니다. 기존에는 왕비 등에게 옥으로 만든 옥책을 하사하고, 왕세자 등에게 죽편으로 만든 죽책을 하사하였는데, 1897년 고종이 조선의 국왕에서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게 되면서 단계가 격상된 금(金)으로 이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금책의 제작 방식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대례의궤』 『대례의궤(大禮儀軌)』는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그 의례와 절차를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으로, 여기에는 당시 황제국가의 위상에 맞게 새롭게 제작된 어보와 금책 등의 제작에 관련한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대동여지도 목판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장상훈) 추천 소장품

대동여지도 목판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장상훈) 추천 소장품 는 지금으로부터 꼭 150년 전인 1861년 고산자 김정호(1804?~1866?)가 손수 제작한 목판으로 인출하여 간행한 전국지도입니다. 김정호는 우리나라의 국토를 남북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각 권의 책은 동서 80리를 기준으로 펴고 접을 수 있도록 제작하여 지도를 편리하게 보관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곧 국토 전체를 모두 22권의 책에 나누어 수록하고(분첩식), 각 권의 책은 병풍처럼 펴고 접을 수 있도록 제책한 것입니다(절첩식). 이렇게 제작된 22권의 책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 크기의 대형 전국지도가 만들어집..

외규장각 의궤, 나라의 운영과 관련된 의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정명희) 추천 소장품

외규장각 의궤, 나라의 운영과 관련된 의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정명희) 추천 소장품 조선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여 중앙집권체제로 운영된 왕조국가였습니다. 국왕의 공식적인 활동은 곧 통치로 연결되었습니다. 특히 국왕은 종묘제례와 같은 국가의 주요 제사, 종묘, 궁궐 등의 건축과 수리, 공신의 녹훈 등을 주도하며 왕권의 정통성과 위엄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외규장각 의궤 중 『종묘수리도감의궤』, 『친경의궤』, 『창덕궁수리도감의궤』, 『보사녹훈도감의궤』 등은 이러한 의식이나 행사가 추진된 배경과 시행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한 의궤입니다. 왕실과 국가의 상징, 종묘사직 조선시대의 국가 제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지내는 제사였습니다. 종묘는 유교 사회에서 국가 권력의 정통성..

영취사 영산회상도, 혜식 등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정명희) 추천 소장품

영취사 영산회상도, 혜식 등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정명희) 추천 소장품 인도의 영취산 영취산이란 인도의 왕사성 부근에 있는 기사굴산을 음역(音譯)한 것으로, 산의 정상이 독수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입니다. 영취산에서 있었던 석가모니불의 설법은 열반 직전에 설한 최상승의 내용으로 손꼽힙니다. 당시의 설법을 기록한 것이 『법화경(法華經)』이며, 영취산에서의 설법모임을 도해한 불화를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라고 합니다. 연꽃과 같은 청정한 가르침이란 의미의 『법화경』은 우리를 여래의 세계에 이르게 할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무수한 비유와 은유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나 불화로 표현될 때는 『법화경』 서품(序品)에 등장하는 설법회의 모습이 주로 그려집니다. 선정(禪定)에 잠긴 여래가..

손기정 기증 청동투구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구문경) 추천 소장품

손기정 기증 청동투구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구문경) 추천 소장품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 경기 때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바치기 위해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투구는 1875년부터 7년여 동안 그리스 올림푸스 제우스 신전을 발굴한 독일 고고학교수인 쿠르티우스의 발굴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투구는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코린트 양식으로 눈과 입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감싸는 일체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코린트 양식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투구는 원형의 머리부분에서 목까지 직선으로 내려오게 만들어졌습니다.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손기정(孫基禎, 1912~2002)이 받은 투구와 같은 것으로 머리부분에서 아래로 잘록하게 들어갔다가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