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의궤, 나라의 운영과 관련된 의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정명희) 추천 소장품
조선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여 중앙집권체제로 운영된 왕조국가였습니다. 국왕의 공식적인 활동은 곧 통치로 연결되었습니다. 특히 국왕은 종묘제례와 같은 국가의 주요 제사, 종묘, 궁궐 등의 건축과 수리, 공신의 녹훈 등을 주도하며 왕권의 정통성과 위엄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외규장각 의궤 중 『종묘수리도감의궤』, 『친경의궤』, 『창덕궁수리도감의궤』, 『보사녹훈도감의궤』 등은 이러한 의식이나 행사가 추진된 배경과 시행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한 의궤입니다.
왕실과 국가의 상징, 종묘사직
조선시대의 국가 제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지내는 제사였습니다. 종묘는 유교 사회에서 국가 권력의 정통성을 상징하였습니다. 사직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민본주의, 농본주의를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종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를 비롯한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나라의 사당으로, 본묘(本廟)인 정전(正殿)과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으로 구분됩니다. 종묘는 국왕의 신주(神主)가 계속해서 추가되었으므로 몇 차례 증축이 이루어졌고, 종묘에 모신 신주나 책보(冊寶)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양란 이후에는 전란으로 불탄 건물과 신주를 수리하거나 새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종묘의 건물이나 제도에 변화가 있을 때에는 종묘 관련 의궤를 제작하여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일년에 두 차례 올리는 종묘제례와 사직제례는 왕이 직접 참여하는 최고의 국가제사였습니다. 종묘제례를 올릴 때, 왕은 제사를 올리기 일주일 전부터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제사를 준비하였으며, 제사 당일에는 최고의 예복을 입고 왕을 상징하는 의장기와 의장물을 내세우고 조정의 문무백관과 함께 종묘로 행차하여 몸소 제사를 주관하였습니다.
백성을 위한 권농, 친경과 친잠
조선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왕실에서도 농사를 장려하기 위하여 국왕이 직접 밭을 갈고 왕비가 누에를 치는 친경(親耕), 친잠(親蠶)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친경이란 국왕이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백성들에게 농업을 권장하기 위해 선농단(先農壇)에 행차하여 제사를 지내고 직접 밭을 가는 의식입니다. 친경과 친잠은 국왕과 왕비가 솔선하여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고 모범을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농업과 곡식의 신을 모신 선농단(先農壇)과 누에의 신을 모신 선잠단(先蠶壇)에 지내는 제사 역시 국가 제사로서 중요시되었습니다. 왕이 친경의식을 행할 때에는 궁궐 밖으로 행차하여 전농동에 있는 선농단에 제사를 지낸 후 적전(籍田)에 나아가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갈았습니다.
왕이 친경할 때에는 왕세자는 물론 관료와 백성들 중에서도 일정한 수를 선발하여 함께 밭을 갈았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왕이 백성과 고락을 함께 하며 권농(勸農)함을 상징하였습니다.
국왕 통치의 중심 공간, 궁궐
궁궐은 왕을 정점으로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진 통치의 중심 공간이자 국가 최고의 관부(官府)였습니다. 궁궐은 국왕의 필요와 의지에 따라 경영되었습니다. 왕이 임어(臨御)하는 공식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을 법궁(法宮)이라고 하고, 이어할 목적으로 지은 궁궐을 이궁(離宮)이라 하는데, 조선의 왕들은 목적에 따라 두 궁궐을 오가며 운영하였습니다.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창덕궁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東闕), 경희궁은 서궐(西闕)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전란이나 화재로 궁궐이 불탔을 때에는 수리도감이나 영건도감을 설치하여 궁궐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었습니다. 이 때 공사 자재는 주로 사용하지 않는 궁궐의 전각을 헐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궁궐 영건은 재정적 부담이 큰 공역이었으므로 궁궐 전체를 완전히 새로 짓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유공자에 대한 치하, 공신녹훈
국왕은 국가나 왕실을 위하여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공신의 칭호와 함께 여러 특전을 내렸습니다. 이를 공신녹훈(功臣錄勳)이라 하는데, 개국이나 반정에 참여하거나 전란 시 전공(戰功)을 세운 경우, 반란이나 역모를 적발하거나 진압한 경우 등에 내려졌습니다. 조선시대에 내려진 공신호는 모두 28종류였습니다.
공신은 보통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3~4등급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등급에 따라 관작, 토지, 노비 등을 지급하고 자손들이 음직(蔭職)으로 등용될 기회를 주었으며, 초상화를 제작하여 명예가 길이 전해지도록 하였습니다. 공신에게는 공적과 상전의 내용을 증명하는 문서인 공신녹권과 교서가 발급되었습니다. 이들 정공신(正功臣) 외에 작은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원종공신(原從功臣)의 칭호가 내려졌습니다. 공신 관련 업무는 공신도감 혹은 녹훈도감이 담당하였습니다.
국왕은 공신녹훈 후 공신들과 함께 회맹단에 나아가 회맹제(會盟祭)를 올렸는데, 여기에서 공신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할 것과 자손 대대로 서로 친목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회맹제는 왕과 공신 간의 결속과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상징적 의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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