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풀꽃무늬 표주박모양 주자와 승반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서유리) 추천 소장품
개성 부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아름다운 청자 주자(注子)와 승반(承盤)입니다. 고려시대 귀족들이 이 주자에 담긴 술을 서로 따라 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절로 상상되는 작품입니다. 색은 맑고 푸르며, 표주박 모양 주자와 발 모양 승반이 한 벌을 이룹니다. 푸른 배경 위에 까맣고 하얀 무늬가 눈에 띄며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가 돋보입니다. 주자는 술, 물 등의 액체를 담아서 따르는 용도이며, 승반은 주자를 받쳐 주자에 담긴 액체를 보온하는 등 기능적인 역할을 합니다. 완벽한 조합과 독특한 표현 기법, 자유분방한 무늬가 특징인 이 주자와 승반은 2017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완벽한 구성과 형태의 아름다움
이 작품은 주자, 그리고 주자 뚜껑, 주자를 받치는 승반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려청자 중 주자는 상당히 많은 수가 전해집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뚜껑과 승반까지 완전한 하나의 세트(set)를 갖추고 있는 예는 드물어 이 청자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주자는 표주박 모양[瓢形]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식물이나 동물, 인물 등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청자를 상형청자(象形靑磁)라고 하는데, 이 주자도 표주박 모양과 닮아 상형청자 범주에 속합니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동그란 형태로 만들어 그 사이를 짧은 원통형으로 연결하였습니다. 이는 표주박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연상시킵니다. 주자의 주구(注口)는 바깥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뚜껑은 반원형이고, 위에 고리를 만들어 달았습니다. 손잡이는 꼬여 있는 넝쿨 줄기 모양으로, 표주박과 함께 있는 구불거리는 넝쿨을 연상케 합니다. 손잡이 상단에는 고리가 있어 뚜껑 고리와 끈으로 연결하여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승반은 대접 모양 몸체와 벌어진 굽이 합쳐진 형태입니다. 중국에서는 받치고 보온하는 승반의 기능에 따라 탁완(托碗), 온완(溫碗) 등의 명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승반의 구연(口緣)은 도톰하게 말려 바깥쪽으로 벌어졌으며, 옆면은 구연부 쪽으로 경사가 급해집니다. 12세기 비색(翡色)청자 주자의 부드럽게 쭉 뻗은 주구, 가늘고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과 비교했을 때 다소 짧고 둔중한 느낌을 주어 13세기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주자와 승반 바닥에는 유약을 걷어 낸 다음 내화토 빚음 받침을 굽에 받쳐서 구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태토는 정선되었고 유약은 광택이 있으며 유색(釉色)은 맑은 회청색을 띱니다. 완벽한 구성을 갖춘 청자 주자와 승반 세트로 사례가 많지 않을뿐더러 기형이 아름답고 문양 표현 또한 돋보여 수준 높은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흑(黑)과 백(白)의 활기찬 대조
고려청자의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청자 고유의 유약 색깔을 강조한 비색(翡色)청자, 무늬를 새기거나 도드라지게 하는 음각(陰刻)과 양각(陽刻) 기법, 그릇 표면을 긁어낸 뒤 그 곳에 다른 색 흙을 채워 넣는 상감(象嵌) 기법까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유색(釉色)이 강조된 비색(翡色)청자와 고려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인 상감청자가 고려청자의 대표로 꼽히지만, 이 작품에 쓰인 철화(鐵畵)와 백화[白畵, 또는 퇴화(堆花)] 기법도 고려청자의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주자와 승반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 독특한 기법으로 표현한 무늬 때문일 것입니다. 얼핏 보면 흑백 상감 기법으로 보이지만 그와 달리 그릇 표면에 흑색과 백색의 흙물[白泥, 黑泥]을 이용하여 무늬를 그렸습니다. 따라서 상감 기법보다 훨씬 자유롭고 대담한 표현이 가능하며 붓의 필치까지 느껴집니다. 검은 부분은 산화철(酸化鐵)(Fe2O3) 성분의 흙으로 문양을 그린 것이고, 흰 부분은 흰 흙, 즉 백토를 이용하였습니다. 이 두 흙으로 무늬를 그린 후 유약을 발라 구우면 이처럼 까맣고 하얀 빛깔로 발색됩니다. 이 기법은 음각·양각·상감 기법으로 표현한 청자의 보조 무늬로 선이나 점을 나타내는 데 이용하거나, 이 작품처럼 중심이 되는 무늬 전체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상감의 흑백 대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상감보다 무늬를 그리는 방법과 과정은 훨씬 쉬우면서도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정교하면서도 활달한 분위기를 자아내 기량 면에서도 숙련된 솜씨라 할 수 있습니다.
청자에 펼쳐진 현대적인 감각
고려청자에 표현된 무늬는 그 작품에 생동감을 더해 줍니다. 자유로운 흑과 백의 필치는 이 주자와 승반의 무늬를 한껏 돋보이게 합니다. 표주막 모양의 주자에는 넝쿨무늬와 풀꽃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주자의 입구 아래에는 세로로 넝쿨무늬가 있고 목 부분에는 가로선이 있습니다. 물을 따르는 주구에는 마치 새로 돋는 싹의 잎맥을 묘사한 듯합니다. 철화와 백화 기법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대비 효과가 뛰어나며, 주구 부분은 테두리를 철화 선으로 둘러 정돈된 느낌을 줍니다. 주자 뚜껑에는 흑백의 선이 교차하도록 세로로 줄무늬를 가득 그렸습니다. 몸체 가운데에는 흰 원을 배경 삼아 그 안에 까만색 꽃을 피웠습니다. 꽃은 한 송이 꺾인 절지(折枝) 형태로 테두리에 음각선을 넣어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무늬를 중심으로 바깥쪽에 백토로 테두리를 두르고 음각으로 넝쿨무늬[唐草文]를 새겼습니다. 승반도 그릇 옆면 네 군데에 흰 공간 안에 피어있는 검은 꽃을 표현하였습니다. 과감히 생략한 꽃의 표현, 넝쿨의 역동적인 모습에서 활기차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적당히 여백을 두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세심한 꽃의 표현에서 최고 수준의 철화와 백화 기법을 구사한 고려시대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청자의 태토를 화폭 삼아 그린 한 폭의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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