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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정양사도(正陽寺圖)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민길홍) 추천 소장품

오죽 (OJ) 2022. 2. 3. 11:05

정선의 정양사도(正陽寺圖)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민길홍) 추천 소장품

언젠가 조선의 많은 화가들이 그린 <낙산사도> 여러 폭을 비교해 보다가 탑을 그리지 않은 낙산사 그림이 더 많은 것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찰 경내에서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셨다는 그 의미에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전각들 사이에 날렵하게 위로 솟아 눈에 띄기도 한데 말입니다. 게다가 탑을 그려 넣으면 그것이 일반 건축물이 아니라 불교 사찰이라는 것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 텐데, 탑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 참 의아했습니다. 사소하지만 궁금했던 이 문제는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중요한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취사선택과 생략의 화법을 쓴 진경산수화


진경산수화는 ‘우리 땅에 실재하는 우리의 산천’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실재 경치를 화폭에 담지만, 분명히 보이는데도 그리지 않거나, 혹은 반대로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보이지 않음에도 그리는 것이 있습니다. <낙산사도>에 탑을 그리지 않은 화가는, 낙산사에 탑이 있는 걸 모르거나 못 봐서가 아니라 낙산사와 주변 산세, 떠오르는 태양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탑을 ‘일부러’ 생략했던 것입니다. 진경산수화에는 이렇게 경물의 ‘취사선택’과 ‘생략’의 화법이 들어 있습니다. 보이는 그대로 다 그린다면 화면은 다종다양하게 빼어난 절경으로 가득 차겠지만, 얼마나 복잡하고 어지럽겠는가. 화가는 단지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풍경을 머릿속에서 다시 구성해서 화폭 위에 쏟아내는 것입니다. 낙산사는 화가의 재량과 상상력을 통해 <낙산사도>로, 정양사는 <정양사도>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양사도>,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22.1 x 61.0 cm

금강산 유람이 크게 유행하던 시절에 태어난 정선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은 금강산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입니다. 금강산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유람을 즐기고 자신의 저택과 정원에서 지인들과 교유하면서 서화로 마음을 기탁하는 풍조는 조선후기 문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앞 다투어 너도나도 금강산 유람길에 올랐고, 다녀온 후에는 신선 세계를 본 양 자랑을 늘어놓기 바빴으며, 유람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 현장에서 느꼈던 생생한 체험을 오래 간직하고자 하였습니다. 정선은 이렇게 금강산 유람이 크게 성행하던 시절에 태어나, 출중한 그림 실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금강산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는 당시 금강산 그림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합니다. 정선의 <금강전도>에는 “발로 밟아서 두루두루 다녀 본다 한들 어찌 베갯머리에서 이 그림을 마음껏 보는 것과 같겠는가”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림 속에서 만나는 금강산이 주는 감동을 실제 그 경물 앞에 서 있는 체험과 비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지만, 그만큼 금강산 그림을 갖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마음만은 진실일 것입니다.

그림 속 곳곳에 있는 금강산의 명소들


정선이 그린 <정양사도>에는 뾰족뾰족한 암산과 부드러운 토산을 배경으로 시원한 푸른색 지붕의 정양사가 산중턱에 있습니다. 정양사는 금강산에서 중요한 사찰입니다. 고려 태조가 담무갈(曇無竭) 보살을 친견하고 예배를 드린 다음 절을 창건하였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의 정맥이 양지바른 곳에 놓였다고 해서 정양사라 이름 붙였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는 약사전 등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부터 내려오는 금강산의 정맥 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정양사의 망루인 헐성루에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금강산 유람을 계획한 이들에게는 꼭 들려야 하는 코스였습니다.

정선이 금강산을 다녀온 것은 현재 밝혀진 바로는 그의 팔십 평생 총 3회에 그칩니다. 1711년에 《신묘년풍악도첩》을 그린 것으로 보아 이때 처음으로 금강산 여행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1712년에는 그가 이병연(1671~1751)의 부친 이속(1647~1720), 이병연의 아우 이병성(1675~1735) 등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했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후 35년이 지나 1747년, 그의 나이 72세에 3번째 금강산 유람을 하였습니다. 물론 몇 번 더 여행하였을 수는 있으나 아직 확인된 바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에 비해 그가 그린 금강산 그림은 매우 많습니다. 한번 보고 와서 계속 재생산해낸 그림이지, 늘상 현장에서 보고 그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금강산 내금강의 전모를 담은 <금강전도> 유형의 금강산도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양사도>처럼 금강산에 있는 명소들을 클로즈업해서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명소를 각각 부각하여 그린 것들이 금강전도 속에 모두 살아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정선의 <장안사도>를 봅시다. 아치모양의 만천교를 지나 장안사에 이르는 공간이 그려졌는데, <금강전도>의 왼쪽 하단을 보면 만천교와 장안사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정선, 《풍악도첩》 중 <장안사>(1)과 <금강내산총도>(2).오른쪽의 <금강내산총도>의 왼쪽 하단을 보면 <장안사>에 나온 그림 그대로가 마치 축소된 형태처럼 작게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강대와 정양사를 그린 <정양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그림에 그려진 건물군이 정양사라는 것은 왼쪽 상단에 화제가 적혀 있어 바로 알 수 있지만, 설사 그 내용이 없었더라도 화면 중앙에 그려져 있는 금강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가운데 정상에 그려진 눈에 띄는 봉우리가 바로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입니다. 정양사를 그리고 있지만 이 그림은 금강전도 형식에서 다른 경물들을 모두 지운 후 금강대와 정양사만을 남겨놓은 셈입니다. 물론 금강전도와 달리 토산을 넘어 암산을 조망하는 위치에서 정양사를 앞에 두고 비로봉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암산과 토산으로 화면을 양분하는 금강전도의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겸재 정선의 취사선택과 생략의 기법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마치 포토샵으로 그리듯 내금강을 담은 <금강전도>를 배경으로 깔고 그 위에 정양사와 금강대만 남겨놓고 나머지 명소들은 생략한 것입니다. 자유자재로 금강산을 쥐었다 폈다 했던 겸재 정선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부채 위에 그림으로써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아름다움 돋보여


이 그림에서 또 한 가지 놓치지 말고 유념해야 할 것은, 이 그림이 그려진 화면이 아치를 이루는 부채라는 점입니다. 그림은 정사각형, 장방형 등 다양한 비율의 화면 위에 펼쳐지지만 사각형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부채 위에 그려진 그림은 특별합니다. 굴곡지며 휘어지는 화면 위에 그려야 한다는 점은 때로는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의외의 탁월한 효과를 낳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겸재 정선의 <정양사도>에서 장대하게 펼쳐지는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가로로 아치를 이루며 휘어지는 선면 위에 그려 넣음으로써, 금강산은 부채의 윤곽선을 따라 아치 형태로 펼쳐져 열린 구도이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줍니다.

 

<정양사도> 부분. 금강산 천일대 위에서 유람하는 선비들(1)의 모습과 그림 상단에 적혀있는 화제(2)

정양사 혈성루에 오르면, 일만이천봉우리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기록을 증명하듯 이 그림 속에는 일만이천봉의 암산이 가득 채워져 우리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겸로(謙老)’라 관서한 것으로 보아 겸재의 노년기 작품으로 생각되는 이 그림은 원숙한 필치로 과감하고 힘차게 내려 그은 전형적인 정선 화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암산과 토산의 경계에는 안개를 그려 넣어 지형을 구분하고 거리감을 살리고 있으며, 전경의 천일대 위에는 금강산의 장관을 유람하고 있는 갓 쓴 선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정양사도>를 감상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림 속 선비가 되어봅시다. 잠시라도 큰 숨 들이 쉬며 전망 좋은 천일대에 올라 금강산을 구경하는 여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정양사도(正陽寺圖), 정선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