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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민속그림, 민화 이야기 (1) - 삼국지연의도.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오죽 (OJ) 2022. 3. 3. 16:33

민중의 민속그림, 민화 이야기 (1) - 삼국지연의도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

삼국지연의도는 삼국지도, 삼국지전쟁도라고도 하며, 보통 삼국지도로 많이 불린다. 삼국지연의도는 민화의 유형 중 ‘윤리화’,‘고사인물화’,‘설화도’,‘사화도’ 등으로 분류된다.

조선시대 삼국지연의도는 언제부터 그려졌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이미 16세기에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던 것으로 보인다. 1559년 가을 박순(朴淳, 1523-1589)이 명을 받들어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를 보고, 시를 지어 바친 내용이 '사엄집思俺集' 제5권 부록에 보인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17세기에도 숙종과 사대부 문집에 삼고초려나 관우(關羽), 적벽대전(赤壁大戰) 관련 그림을 보고 쓴 제화 시가 남아 있다. 18세기에는 그림과 문헌 기록이 모두 현존하는데, 베네딕트회 왜관 수도원 소장의 겸재 화첩에 수록되어 있는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초당춘수도(草堂春睡圖)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남양포슬도(南陽抱膝圖)'가 남아 있다. 두 그림 모두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다. 이용휴(李用休, 1708-1782)의 문집인 '탄만집'에 '초당춘수도'를 보고 읊은 제화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1762년 화원 김덕성(金德成, 1729-1797) 등이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로 추정되는 완산 이 씨의 명으로 당시 유행하던 중국소설 삽화를 모사한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에 '삼국지연의'의 주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이 왕과 사대부의 문집과 현존하는 작품에 따르면 16-18세기 삼국지연의도의 향유층은 대부분 상류층임을 알 수 있다. 작품의 형태는 화첩, 궁궐 내 벽화, 족자 등이다. 내용 면에서는 '삼국지연의'의 전반적인 장면이 다루어지기보다는 왕의 입장에서 충성스런 신하가 필요하고, 사대부의 입장에서 현신을 구하는 것이 제왕에게 가장 중요한 일임을 피력하는 수단으로 ‘삼고초려’가 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아직 중인층까지 삼국지연의도가 확산되지는 않은 단계로 소설 삽화나 벽화, 문인 취향의 담채화 등으로 다양하게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삼국지연의도가 본격적으로 민간에서 유행하게 되고, 민화(民畵) 삼국지연의도가 그려지게 된다. 19세기 삼국지연의도 관련 기록은 1844년에 지어졌다고 전해오는 풍물가사(風物歌辭)인 '한양가' 와 조선 후기 판소리 '춘향가' , 국문 소설 '옥단춘전', 무가 '황제푸리'등에 보인다. 이들 기록은 삼국지연의도가 집 안을 치장하는 장식화로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서울의 무가인 '황제푸리' 에는 ‘삼고초려’가 치장된 집이 곳간 열두 개, 대문과 중문이 있는 부유한 큰 기와집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사대부이거나 그 정도의 부를 보유한 계층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국문 소설 '옥단춘전' 등의 내용으로 보면, 기생들도 삼국지연의도를 향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양가' 에서 광통교 아래 가게에서 삼고초려도를 판다고 하는 내용은 민간까지 삼국지연의도의 수요가 확산되었음을 보여 준다. 19세기 삼국지연의도는 현존하는 작품이나 기록의 내용으로 보아 '삼국지연의'의 다양한 내용을 여러 폭으로 그린 병풍 삼국지연의도나 한 폭으로 그린 삼고초려도가 유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지연의도는 실내를 장식하는 용도뿐만 아니라 관왕묘를 장엄하는 종교화로서도 그려졌다. 어느 지역 관왕묘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삼국지연의도가 벽면에 그려져 있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 관헌 도한기(都漢基, 1836-1902)의 시문집인 '관헌집(管軒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시제(詩題)로 보아 유비가 제갈량을 세번 찾아간 삼고초려를 비롯하여 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에게 호통 치는 장판갈조(長板喝曺), 고성에서 관우가 채양(蔡陽)을 벤 고성참채(古城斬蔡) 등 다양한 주제가 그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서 건립하고 의례를 주관했던 북관왕묘, 남관왕묘, 동관왕묘 등에는 삼국지연의도가 여러 점 봉안되어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현존하여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삼국지연의도는 서울의 관왕묘 건립을 국가에서 주관했던 만큼 규모로 보나 솜씨로 보나 도화서 화원들이 동원되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이후 삼국지연의도는 기록이나 현존하는 작품으로 살펴보면, 양반층을 비롯하여 민간에 이르기까지 향유층이 폭 넓게 확대되었고 집 안 치장으로 사용한 민화 삼국지연의도와 관왕묘를 장엄한 종교화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자료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예술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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