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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천년을 흐른다 -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김희정) 추천 소장품

오죽 (OJ) 2022. 6. 28. 21:42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 -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김희정) 추천 소장품

구름무늬는 우리 민족의 오랜 문화 속에 깊이 녹아 있지만 주로 보조무늬로 사용되어 주목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구름의 등장은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단군신화에는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풍백(바람), 우사(비), 운사’(구름)'를 함께 데리고 왔다고 전합니다. 이는 농경사회를 대변하기도 하지만, 혹독한 자연환경에 대한 경외의 마음 즉, 종교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국시대 무덤 벽을 장식한 사신도도 상서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보조무늬를 사용하였는데, 학자들은 ‘화염문(火炎文)’ 혹은 ‘서운문(瑞雲文)’이라고 합니다. 도가사상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고려시대에는 상서로운 기운을 만들어낼 때 학 혹은 봉황, 용무늬와 함께 구름을 쓰곤 하였습니다. 고려 말 문신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부벽루(浮碧樓)’에는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라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며 쓸쓸한 마음을 구름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구름’은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녹아들어 다양한 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년의 색을 간직한 고려청자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 고려, 높이 23.8cm, 본관1984


천년의 색을 간직한 고려청자 속에도 고려인의 마음을 담은 구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명품이 청자의 푸른빛을 하늘 삼아 노니는 학과 그 옆에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구름이 장식된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12~13세기)’입니다. 이 항아리는 높이 23.8cm의 아담한 크기인데, 어깨에 4개의 귀가 달려 있고 뚜껑이 짝을 이룹니다. 그 형태를 보면 몸체 입구를 넓게 덮고 있는 뚜껑이 어깨선과 이어지고 매병처럼 풍만하면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우아한 곡선이 돋보입니다. 뚜껑과 몸체에는 줄이나 노끈 같은 것으로 서로 묶을 수 있게 꼭지와 귀가 달려 있습니다. 꼭지와 귀는 갈라진 가는 대롱모양에 끝마무리로 양각된 국화를 받쳐 붙였는데, 그 모양새가 목가구의 장석을 연상시킵니다. 뚜껑의 꼭지는 ‘十’로 교차하여 붙였습니다. 아쉽게도 몸체에 붙은 네 귀 중 두 귀는 깨져 있습니다.
색과 무늬를 보면 이 항아리는 12세기 최전성기 고려청자의 비색을 품고 있으며, 다양한 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뚜껑에는 꼭지를 중심에 두고 사방으로 마치 영지뭉치 같은 구름을 바람에 몰려다니듯 생기 있게 구불구불한 음각선으로 새겼습니다. 몸체 입구에는 큰 여의두문(如意頭文) 띠를, 굽도리에는 뇌문(雷文) 띠를 둘러 상감하였습니다. 몸체에 상감한 학은 귀와 귀 사이에 한 마리씩 총 4마리가 구름 사이를 노닐고 있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는 학, 그에 화답하듯 아래를 바라보는 학, 옆을 나는 학 등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이 없습니다. 여기에 학의 부리와 눈, 날리는 머리 깃과 꼬리 깃털, 다리를 흑상감으로 장식하여 생동감을 더합니다. 그런데 학 사이사이 상감된 구름무늬는 모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영지버섯 같은 구름이 ‘之’자로 쌓여 있는 듯하며 꼬리가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길게 내려와 갈필로 그려낸 회화작품 같습니다.
이와 같이 고려청자에는 구름과 학을 함께 장식한 경우가 많은데, 보조적 역할을 하는 구름은 다양한 기법과 모양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와 뚜껑, 본관1984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의 뚜껑·항아리 바닥면, 본관1984

 

고려청자 속 구름무늬의 장식 기법과 모양

 

고려청자 속 구름무늬는 음각, 양각, 백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장식되었지만 상감기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구름의 모양은 구름의 앞, 머리 모양에 따라 영지형(靈芝形), 적운형(積雲形), 우점형(雨點形)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영지형 구름은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과 같이 옛 그림 속 고승의 지팡이 머리 혹은 영지버섯을 닮았습니다. 또한 구름 꼬리가 구불구불하고 긴 점이 특징입니다. 적운형 구름은 뭉게구름이 변형된 모양으로 구름 머리가 작고 꼬리가 짧습니다. 영지형 구름이 단순해진 모양입니다. 우점형 구름은 점점으로 흩어진 구름을 표현한 것입니다. 스프링처럼 꼬이거나 비가 내리듯 짧은 선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영지형 구름무늬(본관1984)
적운형 구름무늬(동원1158)
우점형 구름무늬(신수14472)

 

고려청자 속 구름무늬의 변화

 

고려청자 속 구름무늬는 다양한 모양으로 표현되는데 크게 3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기에는 구름과 학이 매우 사실적이며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름무늬는 영지형으로 머리가 3~5(삼두운, 오두운)개이며, 꼬리가 구불구불하고 길게 뻗어 상서로운 분위기를 냅니다. 춤추는 학과 함께 도교적인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으며, 대체로 12~13세기 상감청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2기에는 1기보다 구름 머리가 작아지면서 형태를 단순하게 하고 주로 적운형 구름무늬를 장식합니다. 주 무늬인 학 혹은 봉황보다 구름의 수가 많아지며 도장을 찍어 장식하기도 합니다. 구름무늬가 청자 전체를 빼곡히 채우면서 최절정기 상감청자 장식을 보여줍니다. 3기인 고려 말에 이르면 그릇의 형태가 날렵함을 잃고 둔탁해지듯 무늬도 도장을 찍어 반복하는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더 단순해진 적운형과 완전히 변형된 우점형 구름무늬가 장식되고, 학 혹은 봉황무늬도 단순하게 변화합니다.
(인용: 이혜경, 「고려시대 청자 운학문 연구」, 충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출처표시+변경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 -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네귀 항아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